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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사랑을 더럽히는 온갖 것들에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 곧 거룩함입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006회 작성일Date 20-10-09 14:06

    본문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느님을 볼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깨끗한 마음은 욕심 없는 마음, 때 묻지 않은 마음, 소박한 마음, 사랑할 줄 아는 마음, 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83항) ‘깨끗하다’는 서술어는 ‘욕심 없다’는, ‘때 묻지 않다’는, ‘소박하다’는, ‘사랑할 줄 안다’는 서술어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동어 반복적 의미 설명은 단어가 지닌 뜻을 조금 더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동어 반복적 설명은 어떤 것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보다는 추상적인 이해에 머물게 하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지?, 욕심 없는 마음이라는 것이 정말 무엇을 뜻하는 것이지?, 마음이 때 묻지 않았다는 것이 뭘 뜻하지?, 마음이 소박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정말 무엇을 뜻하지?,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라는 것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지? 라고 질문을 던지면 여전히 무언가 애매모호한 느낌입니다. ‘깨끗하다’는 서술어를 ‘소박하다’, ‘욕심 없다’, ‘때 묻지 않다’, ‘사랑할 줄 안다’는 비슷한 서술어로 그저 바꿔서 반복적으로 설명한 것뿐입니다. 동어 반복적 설명의 한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깨끗한 마음이란?

     

    성경적 맥락에서 깨끗한 마음이란, 우리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네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호세 2,16 참조)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의 법을 간직하고 새기는 일입니다.(예레 31,33 참조)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에제 36,26)는 성경 말씀처럼,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83항)

     

    물론 여기서 또 구체적인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질 수 있습니다. 과연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하느님의 법을 마음을 새기고, 새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 이 시대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질문 말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성경을 자주 읽는다는 것을 의미하는지, 기도와 묵상에 몰입한다는 뜻인지, 교회의 규범과 가르침에 순종한다는 것인지, 하느님의 법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이 성경의 문자적 가르침을 교조적으로 준수하는 것인지, 교회법적 규정과 법규를 무조건적으로 지켜야 할 이념으로 수용하는 것인지, 복음서가 선포하는 예수님이 지니셨던 마음과 태도를 본받는 것인지. 이 시대에 새 마음 새 영으로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이처럼 다양한 관점과 각도에서 질문을 계속 던질 때 우리는 깨끗한 마음이 신앙적인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깨끗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마음을 더럽히는 온갖 것들에서 마음을 지켜내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잠언 4,23) 거짓으로 더럽혀진 것은 그 무엇도 주님 보시기에 참된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거짓을 피해 가고 미련한 생각을 꺼려 떠나가 버리십니다.’(지혜 1,5)”(‘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84항)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거짓과 미련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물론 무엇이 거짓이고 미련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질문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함부로 참과 거짓을 속단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 현명한 생각이고 무엇이 미련한 생각인지 섬세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과 세상의 문제에 있어서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아갑니다. 사람의 위선과 사회의 구조적 은폐와 모순이 참과 거짓을 쉽게 판별하기 어렵게 합니다. 하지만 자신 안의 참과 거짓은 스스로 정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래도 조금은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자신 안의 참과 거짓은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의 문제입니다.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이 결여된 사람은 자신 안의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의 태도가 몸에 밴 사람은 자기 안에서 참과 거짓을,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핵심은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입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끊임없이 주님 앞에서 자기를 성찰하고 자신을 반성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허한 말 vs. 진정한 원의

     

    모든 신앙인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신앙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신앙은 단순한 믿음(신념)이 아니라 사랑의 행위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선언하는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말로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종교인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인을 찾기란 참 어렵습니다. ‘마음으로’ 즉, “공허한 말이 아닌 진정한 원의”(‘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86항)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한다는 신앙인의 고백이 단순히 공허한 말인지 아니면 진정한 원의인지는 그(녀)의 행위를 통해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물론 행위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똑같은 행위처럼 보여도 속내에는 다른 원의들에 의해 발생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마음과 원의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말과 행위를 통해 추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숨겨진 말과 행동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타인의 마음을 판단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을 판단해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 그저 공허한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아니면 내 안의 진정한 원의인지, 자기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해보면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참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깊은 바람과 결심은 이 마음속 원의에서 생겨”(85항)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

     

    “사랑의 행동 없이는 분명 사랑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참 행복은, 주님께서 우리 형제자매들에 대하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을 우리에게 기대하신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85항) 그리스도교 사랑은 그저 말과 행동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으로서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사랑의 행위를 실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으로서의 사랑입니다. 마음이 없는 행위는 그저 죽은 행위일 뿐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헌신만이 지속적일 수 있고 참된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참 변덕스럽습니다. 공부와 성찰과 일상적 수행을 통해서 끊임없이 마음을 수련시키고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만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만들고, 공부와 성찰과 수행을 통해 마음을 지켜나가며 깨끗하게 할 때,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어 갈 것이며, 분명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0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가톨릭뉴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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