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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삶 안에서 드리는 기도와 예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690회 작성일Date 21-03-24 18:13

    본문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삶 안에서 드리는 기도와 예배

     

     

    진정한 예배

     

    코로나 사태로 오랫동안 전례와 성사의 참여가 힘들어졌습니다. 코로나 시절, 방역지침을 어기고 예배를 강행하는 일부 개신교 교회의 모습을 언론을 통해 가끔 목격하고 있습니다. 현장 예배에 목숨을 거는 듯한 어떤 목회자들과 신도들의 태도를 보면서,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예배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끔 오해할 수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만, 또는 단지 특정한 윤리 규범을 준수함으로써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04항). 물론 전례에 성실히 참여하는 것, 기도 열심히 하는 것,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는 것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그저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전례 참여와 기도 수행과 윤리 규범 준수는 자칫 우리 신앙인들을 현대판 율법주의자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전례와 기도와 윤리 규범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늘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전례에 참여하고 있는지, 어떤 지향과 내용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윤리 규범의 준수가 자기 신앙의 성숙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타인을 판단하고 규정하고 비난하기 위한 것인지, 때때로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의 완성은, 우리가 받은 하느님 은총을 이웃을 향한 헌신으로 증언하는 것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04항). 예배의 은총은 삶 안에서의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진정한 예배는 언제나 이웃을 향한 자비와 사랑의 행동과 태도로 귀결됩니다.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전례로서의 성사와 삶으로서의 성사는 언제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실천은 형식적인 예배 행위보다 더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씀을 길게 인용하면서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06항).

     

    “우리가 희생 제물과 밖으로 드러나는 봉헌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을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희생 제물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지만, 우리 신심을 북돋우고 이웃에게 보탬을 주고자 당신께 그 희생 제물을 봉헌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을 비참에서 구하는 자비야말로 하느님께서 더욱 기꺼이 받으시는 희생 제물이 되는 것이고, 우리 이웃의 행복에 더욱 직접적으로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절, 미사 참여의 은총과 기쁨을 누리지 못해 답답해하는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성전에 모여 예배하고 공동으로 기도하는 미사는 신앙생활의 정점이며 핵심입니다. 미사의 은총을 통해 신앙인은 세상 속에서 사랑과 자비의 삶을 살아갑니다. 코로나 사태는 미사의 소중함과 그 참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감염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가끔 또는 자주, 우리는 공동체와 함께 하는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일상의 삶 안에서 우리가 드리는 미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 사랑과 자비의 태도로 살아간다면,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과 태도가 아니라 이웃을 향한 헌신의 마음과 태도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우리 삶의 자리에서 드리는 진정한 예배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의 시간은 어쩌면 삶의 미사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다운 기도

     

    신앙인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도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청원의 기도를 간절히 바치기도 하고, 절망과 좌절의 시간에 주님께 하소연하는 탄원의 기도를 올리기도 합니다. 성인들의 통공을 믿는 우리는 타인을 위해 또는 죽은 이들을 위해 전구의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기도합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모든 기도는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진정한 기도는 우리를 성화시킵니다. 즉,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늘 묻고 성찰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진정한 것인지 식별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의 삶이 자비의 빛으로 얼마나 변모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05항).

     

    진정한 기도는 우리를 자비와 사랑의 헌신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예쁜 말들을 나열하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이기적 욕심과 욕망을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 기도일 수 없습니다. 마치 자신이 판관이며 선지자인 것처럼 타인을 단죄하고 저주하는 것이 기도일 수 없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언제나 경청과 겸손과 자비와 사랑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콜카타의 데레사 성녀가 보여주었듯이, 세상과 이웃을 향한 사랑과 연민이 진정한 기도입니다(107항).

     

     

    소박한 삶이 일상에서 드리는 기도와 예배입니다

     

    어떤 한 신앙인이 매일 미사 참여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성무일도 기도를 바치고, 교리적 신념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다 해도, 그 사람이 반드시 거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미사, 기도, 규범 준수는 거룩함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찬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 우리는 미사하고 기도하며 윤리적 규범을 준수합니다. 미사와 기도와 교리적 규범 준수는 하느님과 일치(성화)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사람이며, 자기 존재 자체로 하느님을 찬미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07항). 우리 자신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와 예배여야 하며, 우리의 삶이 참다운 기도와 진정한 예배여야 합니다. 즉, 진정한 신앙인은 자신의 존재와 삶으로 하느님께 진정한 예배와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물질주의, 향락주의, 소비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물질적 욕망과 쾌락에 빠져들고, 이기적 소비와 소유의 향락을 추구하며, 피상적 정보와 가상현실 등에 사로잡혀 살아가기 쉽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08항). 이러한 시대에 자신의 존재와 삶으로써 하느님께 진정한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신앙인의 모습은 소박한 생활양식으로 표현될 것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강조합니다(108항).

     

    소비와 소유의 욕망에서 벗어나 소박한 삶을 사는 것, 자기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타인을 향한 헌신과 자비의 삶을 사는 것, 이웃의 형제자매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에 공감과 연민과 사랑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삶 안에서 드리는 진정한 기도와 예배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3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가톨릭 굿뉴스 자료실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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