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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부활 성야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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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홍보부 댓글 0건 조회Hit 17회 작성일Date 26-04-06 08:36

    본문

    부활대축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전례서를 보면, 부활 성야 미사는 “밤이 되기 전에 시작하지 말아야 하며 주일의 날이 밝기 전에 마쳐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이 거룩한 미사를 밤에 거행하도록 하는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인들이 빈 무덤에 도착한 시간은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마르코 16,2)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시간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순간,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예수님 부활은 죽음을 이긴 생명의 승리이며 어둠을 이긴, 빛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희망을 선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이 세상의 어떤 어두운 상황 속에 있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견뎌야 하는데 그 견디는 힘을 예수님 부활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도 부활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놓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자 어두움입니다. 아담의 죄, 원죄로 말미암아 죽을 운명에 처해 있던 인간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독서 탈출기(14,15-15.1)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통해 홍해를 건너게 함으로써 그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죽음의 어둠 속에 있던 우리를, 예수님 부활을 통해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혜화동 신학교의 한 건물 경당을 수리할 때 화가에게 14처를 그려달라고 의뢰했습니다. 「14처」 그림이 완성된 후, 작가에서 혹시 15처 ‘부활’을 그려 줄 수 있는지 여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 1923-2019)는 『나사렛 예수』라는 작품을 통해 예수님의 생애를 영상으로 담았고 그 영화 제작의 경험담을 1978년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분도출판사의 『나의 예수』입니다. 그 책에서 그는 예수님의 부활이 영상으로 표현하기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가가 제15처,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표현할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작품을 의뢰한 지 몇 달 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의 상상력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습니다. 오늘 복음인 마태오에서 묘사된 대로 빈 무덤의 모습을 그려올까, 그렇다면, 빈 무덤을 지키고 있는 천사의 모습은 어떻게 그릴까? 빈 무덤을 목격하고 놀라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를 어떻게 표현할까? 마르코나 루카 복음에 나온 대로, 무덤 속에서 젊은이가 예수 부활을 설명하는 장면을 그려올까? 요한복음에서처럼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그려올까?

    그런데 몇 달 후 화가가 그려온 작품 「부활하신 예수님」은 저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 그림 속의 예수님은 주변에 아무도 없이 홀로 평범하게 서 계셨고 매우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화가가 앞서 그려 주셨던 「최후의 만찬」이나 「14처」에 묘사된 예수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약간 상기된 표정과 하얀 옷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화가가 그려온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작품은, 저로 하여금, 부활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그림은 부활이 대단하고 요란한 사건이 아니라 단순하고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일임을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부활은 천둥번개가 치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일상에서 침묵과 함께 조용히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부활의 순간은 어쩌면 주변에 아무도 없이 외로이 하느님을 홀로 만나는 고요한 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활은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고 과거의 모습 그대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의 예수님이 마치 저 자신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부활한다는 것은 육신과 영혼을 지닌 인간이 이 세상에서 맺은 모든 관계가 저 세상에서 하느님 앞에 복원(復原)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뿌린 선행의 씨앗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지 않고, 저 세상에서 은총의 열매를 맺어 나에게 의미 있게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평안하냐?”(마태 28,9)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28,10)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두려움 없는 평안함의 상태임을 알려주십니다. 화가가 그려온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 역시 이렇게 두려움이 없는 평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혹시 우리가 밤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유난히 빛을 발하는 그리스도의 빛을 바라봄으로써, 영적으로 두려움 없이 평안하다면,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부활입니다. 그렇다면 동시에 우리가 이다음 하늘나라에서 그분을 만나 경험하게 되는 부활 역시도 그렇게 두려움이 없는 평안함일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과 화가의 그림이 알려주는 부활은 모두 두려움이 없는 평안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어떤 어둠 속에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거룩한 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평안하냐?”(마태 28,9)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28,10)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이미 부활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마태 28,6)습니다. 알렐루야

    2026년 4월 4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목동성당 주임 신부 원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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